2013. 10. 22. 19:54 AOT SSUL
1.
선정적인 신은 보는 사람 눈을 붙들어 두는 힘이 있다.
이런 장면이 나올게 충분히 예상되는 포스터를 보고 고른 사람답게 배우들이 열심인 만큼 성의 있게 봐주는 한지.
그녀가 숨을 죽이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한편, 곁에 앉아있는 리바이는 영화가 시작된 이후 계속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화면 속 남녀의 몸의 대화가 길어진다. 뭔가 농도가 짙다.
한지는 자신도 대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재미없어?
-짜고 치는데다, 결말까지 뻔한 경기가 무슨 재미가 있냐.
그는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린다.
-나랑 할 때는 결말이 달라? 재미있어?
-야.
-흐음. 어떤지 말 해줘.
그녀가 안경 아래 눈을 빛내며 똑바로 바라보자 그는 슬쩍 몸을 틀면서 대답한다.
-이상한 것 좀 묻지 마.
-궁금한데.
-알면서 왜 물어봐.
-난 잘 모르겠던데. 할 땐 얼굴 보기 힘들어서 말이야.
그는 미간을 찌푸린다.
-...... 쓸데없는데 호기심 많아. 대낮부터 이런 거나 보자고하고.
-응, 호기심 많아. 사실 저런 것도 궁금하기도 하고.
-궁금해 하지 마.
리바이는 장난치지 말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선 무린데.
이럴 때는 진짜 고지식한 남자 같다. 물론 겉으론 딱딱하고 고지식하긴 하지만 때까지 그녀가 경험한 결과 리바이는 의외로 잘 리드하는 스타일이다.
매너도 좋았다. 그래서 그녀는 딱히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 쪽이 뭔가 바라는 게 더 있을 것 같아서 찔러본 것이었는데.
놀리는 것으로 알고는 리바이는 대화를 피한다. 뭔가 할 일이 생각났다는 듯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켜고 주방으로 향한다. 그녀는 볼륨을 높인다.
2.
아무리 데이트 중 분위기가 달아올랐더라도, 지하철이 끊겼다 하더라도 모텔은 커녕 (그는 탄저균 오염지 보듯이 인상을 쓰며 고갤 돌렸다) 호텔도 가본 적 없다.
어쩌다가 한번 카1섹스 직전까지 간 적은 있었다. 한창 스킨쉽을 찐하게 하다가 서로 벨트까지 풀었지만 돌연 그가 몸을 떼어내 티슈로 시트를 박박 닦는 걸 지켜봐야 했다.
어쩌다 보니 데이트 대부분을 그의 집에서 하게 되었다. 극장도, 식당도 산책도 싫어하는 리바이를 배려한 것이다. 그녀는 데이트 코스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그가 어떻게 자신과 맨몸으로 잘 수 있는지. 그녀는 지금도 잘 모른다.
혹시 결벽증 때문에 최소한의 접촉으로 하는 걸 좋아하지만 단지 숨기고 있을 뿐일지도.
그녀는 기억을 더듬는다. 그와의 교제 이전에 짧고 길게 사귀었던 남자들과의 잠자리를.
생각해봐도 별로 다를 게 없었다.
한참 그와의 최근 잠자리를 머릿속에서 리플레이하던 그녀는, 돌연 정신을 차린다.
대낮에, 그것도 회사 사무실에서 떠올리기엔 얼굴이 너무 풀어져버릴지도 모른다.
3.
그는 한때 결벽증이 매우 심했었다고 한다. 그가 말하기를, 중 고교때부터 시작되어서 점점 심해졌다고 했다.
문손잡이를 손수건으로감싸 쥐는 건 당연 했고,
앞에 앉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보는 것조차 불쾌해 집으로 도로 가버린 적도 있었다고.
나이 먹고 나서는 적당히 참을 줄 알게 되었지만, 습관은 여전하다고 했다.
둘이 사귄지 이틀 만에 그가 털어놓은 사실이었다.
-저기, 리바이. 친구들이 별나게 보지 않았어?
-그런 내색안하는 놈들만 남았지.
당연하다는 듯 그가 말했다.
학창시절, 매일 고통스러워했던 그는 얼른 성인이 되어 자기가 통제 할 수 있는 공간에 틀어박히길 원했다고 했다.
살벌하게 깔끔한 그의 집 같이, 안심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마음편히 지낼 수 있을까.
지금도 원하지 않는 공간에서는, 누군가가 자신의 앞에서 먹거나 말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불편하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럼 나랑 만났을 때도, 되게 싫었겠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연하지. 너는 보통 이상이었으니까.
두 번째 데이트였나. 그때는 그녀도 만취할 생각은 없었다. 적당한 긴장과 설레임으로 남자친구가 된 그 앞에서 내숭을 조금 떨었었다. 그게 1시간밖에 가지 않아서 문제가 되었다. 점잖게 와인을 마시다가 취했고, 취해서 2차를 가자고 했고, 거기서 또 맥주를 마셨다. 그러다가 우연히 건너편 테이블에 있던 동료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다. 그날 회사 근처로 데이트장소를 잡은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리바이였기 때문에, 묵묵히 참고 있었다.
시끄러운 술자리는 새벽2시까지 계속되었다. 정신력으로 견디고 있었던 리바이는 테이블에 엎드린 그녀를 끌어내 술집을 나왔다.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는 길. 리바이는 그녀가 갈지자로 걷는 바람에 같이 사정없이 휘청거려야 했다. 그녀는 리바이에게 남자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자꾸 말했다. 그것도 귀에 바짝 얼굴을 대고. 알았다고 그만하라고 , 리바이는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번 데이트하고 여자친구의 모든걸 보고 말았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택시를 태울까 잠시 고민하느라 리바이가 발걸음을 멈추자, 그녀가 갑자기 무릎이 꺽이면서 옆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그대로 길가에 서 있는 차 뒤로 황급히 뛰어가선, 먹고 마셨던 것들을 모조리 게워냈다.
리바이는 그래도 한지를 끝까지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스킨십도 이상한 쪽으로 다 해버렸다. 안기고 들쳐업히고 벗겨내지고 닦이고 내쳐지기까지.
다음날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8개나 보내면서 한지는 덜덜 떨었다. 이 남자 이제 와서 사귀자는 거 취소하는 건 아닐까.
아니 아예 연락처를 지워버린 건 아닐까. 그녀는 숙취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면서 또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리바이에게 답장이 왔다.
앞으로 데이트에 더 이상 술자리는 없다고 못을 박긴 했지만. 이후로 계속 만나고는 있다.
그녀가 리바이에게 꽉 잡혀 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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